태그 : 20대

나는 내 민주주의를 내 부모에게 빚졌다.

어디서 이렇게들 많이 오시나 해서 리퍼러를 확인해 봤더니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클럽? 거기서 많이들 타고 오셨드만요.

그런 곳이 있다는 것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식견을 또 한번 넓힐 수 있게 되었군요.

대략 와서 쏟아놓고 가는 이야기를 보면, 


1) 싸가지 없는 새끼.

2) 저분은 대단한 분이고 너따위가 깔 수 없는 분이다.

3) 10대는 너희와 다를거야!

4) 이기적인 새끼.

5) 어른이 말하는데 어디서 말대꾸냐.

6) 너희는 민주주의를 빚졌다.

7) 그냥 그따위로 계속 살아라.

8) 고등학교 가서 국어 다시 배우고 와라.

9) 20대가 촛불을 외면했다.

10) 순수한 정의감이라곤 없는 종자.


정리해 놓고 보니 참 역겨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승리한 병신이 되어야 할테니 이 병림픽을 끝까지 밀고 가겠습니다.


1), 4), 5), 7), 8), 10)은 내가 변희재라면 당장 들고 고소했을 만큼 개인에 대한 인격모독이므로 저 것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나머지를 순서대로 살펴보고, 그 다음에 제목에 언급한 나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2) 저분은 대단한 분이고 너따위가 깔 수 없는 분이다.
김명수 씨 외 한두분 정도가 제기한 문제인데요.

말의 내용을 해석함에 있어서 화자가 누군지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자의 권위로 발언내용의 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노무현이 똥을 된장이라고 하면 그게 진짜 된장이 되겠는가? 그리고 노무현은 그딴 장난질을 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모든 발화는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너 잘못되었다 하는데, 말할 수 있는 종자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터넷은 참 대단합니다. 남녀노소를 모두 계급장 떼고 동등한 테이블에 앉도록 강요하지요. 그게 싫으면 인터넷을 하지 마세요.



3) 10대는 너희와 다를거야!
9) 20대가 촛불을 외면했다.

3번은 "^^"씨 외 여러분이 
9번은 "대화가"씨 외 여러분이
제기해 주신 문제입니다. 

이 두개는 이어져 있는데요. 일단 "타락한 20대와 다른 빛을 내는 10대"라는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언론에 의해 제조된 허상입니다. 이 짓거리가 처음 제 기억에 남아 있기로는 앞 글의 댓글 속에서 "천지화랑"씨가 소개해 주신대로 효순이 미선이 때 부터입니다.

그때 이미 학생조직들이 말라죽어가던 말기였거든요. 그래서 그들과 다른 뭔가를 제기하는데 그게 효순이 미선이때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강의석으로 이어지구요.

물론 지금 와서는 효순이 미선이때의 중고등학생이나 강의석은 20대가 충분히 되었지만, 그때 그렇게 찬양하며 이미지를 만들던 언론은 필요가 없으므로 눈을 한참 전에 돌렸지요.

작년의 10대 신화가 어떻게 작성된 거냐면, 촛불 초기에 고딩들이 많이 왔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기사를 썼지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뒤늦었지만 20대들도 많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이 잘려져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 기억에서는 촛불과 20대가 괴리되어서 남아 있는 거지요.

하지만, 촛불과 20대가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은 많은 자료를 통해서 남아있습니다. 애초에 처음 촛불이 시작되었던 패션 커뮤니티에서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 들 중에서 20대가 없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전경이 군화로 짓밟던 여자분도 20대였구요. 그 뭐시기 고대녀? 그분도 대학생이구요. 그 연대 앞 강제 진압이 있던날 울면서 전화했던 목소리도 30대라기엔 앳된 20대의 목소리였던것 같구요. 그 물대포 물벼락 속에서 깃발과 태극기를 흔들며 맞섯던 청년도 20대구요. 촛불 예비군들 중에도 20대가 있구요. 그 거리에서 같이 뛰었던 20대 중에는 저도 있고, 제 친구도 있고, 그 친구의 동기도 있고, 갑작스럽게 만난 고등학교 동창도 있고, 등등 많아요.

그래서 10대들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 그게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고, 어느세대나 멋진 소수는 늘 있어왔고 그들이 부각된 것 뿐입니다. 그리고 20대도 촛불에 나왔지만, 모두의 기억속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은 잊지 말아주세요. 그런게 역사 왜곡입니다.



6) 너희는 민주주의를 빚졌다.

자 마지막으로 이 질문이 남았네요. 이건 어떤분이 말씀하셨는지 따로 찾지 않을게요. 너무 피곤하고 졸리네요. 보통 저렇게 쌍욕을 무더기로 먹으면 잠 못자거든요.

어쨌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 내가 쓰고 있는 안경,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아침 마다 먹는 밥, 내가 다니는 학교, 그 학비 등등 모든 것이 다 남에게서 온 것이고, 나는 그 것에 감사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예외는 아니지요.

어디까지 올라가야할까요?


고대 사회주의자인 나의 주 예수까지 올라갈까요? 아니면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전쟁?

가깝게 80년대로 국한해 볼게요.

나의 민주주의는 내 부모님께 빚진 것입니다.


내 부모님은 두분다 70년대 학번이시지요. 80년대에 아버지는 이미 직장인이셨고, 어머니는 80년대 초에 졸업하시고 결혼해서 저를 낳으셨죠.

하지만 어머니도 80년 서울의 봄 서울역 회군 장소에 계셨고, 내 아버지는 반정부 빨갱이로 찍혀서 삼청 교육대에 끌려갈 뻔했지요. 그리고 이른바 기장(쉽게 말하면 빨갱이 기독교) 측의 문화도 함께 받으며 내 인생은 시작되었고, 내 아버지는 그런 위협을 겪었음에도, 무슨 모임이다. 무슨 강연이다. 몰래몰래 찾아다녔죠. 그 당시 내 아버지가 민주화의 무슨 큰 이름을 남겼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나와 내 동생에게 물려줄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어머니의 서울역 회군도 나에게 온 이 민주주의의 한 귀퉁이 언저리에 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386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의 공은 내 부모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직도 없는 일반 시민이 그 시절에 겨우 교회 정도를 통해서 약간의 참여를 조금 했던 것 외에는 뭘 더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행동들이 쌓여서 그 결과로 사회에서 왕따가 되고, 내쳐지는 과정에서 그 어떠한 조직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내 부모는 민주화에 아주 조금이지만 각각의 분량을 충분히 복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86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보호조차도 받지 못했지만 그렇게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내민 소심한 한 걸음들이 모여서 넥타이 부대가 되었고, 87년도의 일을 이루었다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민주화는 386에게 진 빚이 아닌,
내 부모에게 진 빚입니다.

내 부모에게 진 빚이며, 그리고 그 생활의 여파를 평생 내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기에, 나에게 민주주의라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옳음이라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민주주의라는게 입에 발린 그냥 그런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정의에 복무하고, 약자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까뭉게지 않을때 그 것이 진정 의미있는 민주주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민주주의는 소중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이(민중이, 사람이, 국민이) 동등한 주권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 자체의 존엄을 인정하는 원칙이며, 누구도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현실을 정당화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나의 존엄할 권리, 나를 불가침 당할 권리. 내가 너 만큼이나, 네가 나 만큼이나 존중받는 것이 당연해야 하는 제도. 그게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리를 행사 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그 대상을 존중하지 않으며 내리쳐 지는 언행들이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교훈의 말씀들이십니까!

누차 이야기 하지만, 그 것은 그냥 권위주의의 잔재일 뿐입니다. "너가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너의 권리를 외치지 않는 너는 개새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 것은 청자를 정당한 주권을 가진자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 상대방의 선택과 결단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전두환과 싸우던 방식으로 20대와 싸우려 들지 마십시오.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고 싶다면, 민주주의에 걸맞게 이야기 하십시오.


그 것이 당신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길입니다.


이런식의 폭력과 권위 휘두르기는 내 부모가 복무한 민주주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입니다. 그만들두세요.


나는 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설득하고, 대화하고 싸워 나갈 것입니다. 아마 당신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런 당신분들을 존중하겠습니다. 당신분들이 나를? 또 한 다른 20대른 존중할지는 당신분들의 선택입니다.

니 맘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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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ouin | 2009/06/13 08:19 | 잡담 | 트랙백 | 덧글(10)

20대 까는 분들 좀 와서 얘기 좀 합시다.

어느 사람의 병X 인증?에서 계속


한번 이야기 좀 해봅시다.



1. 세대론의 허구성.

2. 왜 까는지도 애매한 모호함.

3. 20대가 호구인 것이 투쟁을 안해서인가?

4. 이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20대 세대론의 허구성.

나는 386이라는 단어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것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다. 386은 애초에 젊은 정치세력을 까기 위해서 임의로 뭉뚱그린 하나의 만들어진 표어이다. 80년대에 386이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때는 386컴퓨터도 없었고.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7년 1월 4일자 조선일보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 용어일 뿐이다.

그리고 이 386이라는 단어는 60년 생, 80년대 대학교 입학생에 국한된다. 게다가 동일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으로 국한하면, 그 수는 더 줄어든다. 즉 386세대는 80년대의 20대 중 특수한 집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은 지금과 달리 높지 않았다. 1999년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 포함 진학률은 75.4%에 달하지만, 1980년도에는 21.3%, 1985년도에는 36.3%에 불과하다. 당시 모든 대학생들이 모두 386세대의 정서를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물론 동 연령 인구집단에서 10에서 20%가 동일 정서를 공유하고, 어떤 공동체험을 했으므로 386세대는 충분히 하나의 세대로 인정될 수 있다. 그들은 큰 테두리에서 동일한 정치적 목표 - 군사독재철폐 - 를 지향했으므로 단일한 세대로 취급될 수 있다. 물론 나머지 최소 50%이상의 동일연령의 그러나 386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에 같은 도식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우석훈이 주장한바와 같이 지금의 20대 즉 80년대생을 88만원 세대로 묶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취직난과 비정규직의 위협, 저임금등의 환경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나, 사회적 환경이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88만원 세대는 386세대와는 다른 의미의 세대인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같은 "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내포하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우선 88만원 세대는 대학생에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고학력(이른바 명문대 인기과)이거나 높은 사회계층의 사람은 제외되는 반면에, 386세대는 대학생에 국한되고 고학력에 집중되어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는 엘리트세대가 아니지만, 386세대는 엘리트세대라는 것이다.(조악하지만, 엘리트를 인구집단의 상위 20%로 생각해보자.)

그리고 정치적 지향의 측면에서도 386세대는 비교적 공동의 지향이 있었던 반면에, 88만원 세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80년대에도 60년대 생 인구집단의 정치지향은 나뉘어 져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88만원 세대도 그러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바에 의하면, 88만원 세대는 동일한 사회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나 양태면에서 오히려 동시출생집단(cohort)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 범주가 몹시 넓은 광의의 세대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에 그 누구도 당시 20대인 60년대생 전체에게 386이 되기를 요구할 수 없었듯이, 지금의 20대 80년대생 전체에게 386이 되기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20대론은 흡사 "모든 어린이들에게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광범위하고 무의미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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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까는지도 애매한 모호함.

김용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20대를 질타하는 것은 대부분 그들이 이기적이고, 사회에 관심이 없으며, 토론하지 않고,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장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맞다.

그 말이 맞다.

많은 20대는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 관심이 없고,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장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그렇다.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20대는 그 누구보다도 토론을 많이 해본 세대다. 놀라셨나? 놀라셨을 거다. 지금의 20대는 인터넷 문화에 매우 익숙하다. 인터넷은 시각정보에 집중된 매체이고, 문자, 문서, 그림, 영상으로 소통된다. 그들은 끊이없이 문자를 쓰고, 글을 쓴다. 

남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걸 하는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병림픽"이라는 단어를 알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서로 싸움이 붙은 것을 병림픽이라고 부른다. 병신 올림픽이라는 뜻인데, 이른바 무의미한 자존심 싸움이나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 가지고 싸우는 것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그 병림픽은 글로 진행된다. 서로의 글을 붙잡고 서로 욕하고, 서로의 글의 무논리성과 가치없음을 가지고 우열을 가린다. 병림픽의 승자는 상대방이 더이상 그 어떤 논리로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할 정도까지 계속해서 글을 쓴다. 패자는 자신의 논리가 떨어지면, "사과문"을 올리던지, 아니면 자신의 글을 지운다.

이게 토론이 아니면 뭔가? 물론 병림픽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소통 중 가장 하급의 저열한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서로 면상보고 있으면, 주먹 날리고 발로 찰테지만, 지금 세대는 글을 쓰고 논리을 만들어 공격한다. 이게 토론이 아니면, 진중권에 대한 변희재의 끝없는 구애가 토론인가? 아니면 티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나와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하는게 토론인가?

그리고 20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누군가가 만든 덫에 빠졌음을 알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게나마 대충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취업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취업을 할때, 300~400만원씩 받는 직장이 이제는 거의 없다는 것 모르는 20대가 있을까? 그런 현실이 단순히 경제가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 20대가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취직이나 공무원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냥 놀고 있겠지.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많은 20대는 "이길 수 없다."를 선택했다.


그 것이 차이다. 그리고 당신분들은 그 선택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20대가 멍청하거나,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많은 20대가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당신분들은 20대를 까거나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3. 20대가 호구인 것이 투쟁을 안해서인가?

앞서 이야기 한대로 많은 20대는 "이길 수 없다."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규모 투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까인다. 새차게 까인다. 그 깟거 취직문제야 우리도 힘들었지만 우린 투쟁했어. 이렇게 20대는 비겁자가 된다. 많은 20대가 비겁자로 지칭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과연 그렇게 앞뒤 안가리고 까기만 할 수 있는 상황인가?
많은 20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충분했는데도, "이길 수 없다."를 선택한 것인가?

아니다.

먼저 다시 앞으로 잠깐 돌아가서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이 과연 옳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직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내리기 까지는 그가 가진 환경과 역량을 따져보았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 조금 관심있는 평범한 대학생을 가정해 보자.

그는 예전보다 안전하다. 더이상 경찰이 밤길에 방문해서 산아래 작은집으로 끌고가지는 않는다. 변사당하거나 의문사 당할 걱정도 없다. 고문도 당하지 않는다. 취직에 있어서도 운동권이기 때문에 기피당하지는 않는다.

그는 예전보다 외롭다. 학생회 조직은 붕괴되었다. 동아리 라인도 사라졌다.

그는 미래가 위태롭다. 그는 수 많은 쓰고 버릴 수 있는 듣보잡 대학생 중 하나일 뿐이며,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잉여인력이 산적해 있다. 9급시험 통과하기도 토나오게 어렵다. 대학생이라고 취직되던 시절은 갔다.

그는 심지어 명예와 명분도 없다. 그가 뭔가에 대항해서 싸우려 해도 과연 그가 옳은 것인지 지지하여줄 이론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자가 없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지해줄 친구, 선배, 후배도 없다.

그는 집회 나갈래도 외롭다. 학생회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도 없다. 학생회라봤자 몇명이 모여서 그들 내부 단속하기도 어려워보인다. 집회에 나가서 혹시 연행이라도 되고, 벌금이라도 맞으면 모금운동을 해줄 조직도, 위로해줄 동지도 없다. 구속당해도 그를 풀어주라고 외쳐줄 조직이 없다. 그가 연행되면 그냥 그 혼자 연행된 것이다. 치료비와 벌금은 알바를 하든 부모님 지갑에 대못을 박든해서 채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를 선택한 그가 이렇게 욕을 먹어 마땅한가?


그가 외롭게 소모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외롭게 광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 진정 옳고 그렇지 않은 그는 부도덕한가?

이정도 의식이 있으면 괜찮다고 말할텐가? 당신분들의 지적은 그보다 더 의식없는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은가?

외롭게 행동하지 않고 있는 "의식만 있는" 이와, "이길 수 없다."를 당연하게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선거 이야기가 나올텐데, 투표가 어쩌구 다 좋다. 하지만, 87년 그 항쟁 후에 대통령이 노태우가 되지 않았나.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명박과 사회의 탓을 20대에게 하려면, 노태우의 탓은 누구에게 할텐가, 김영삼의 탓은 누구에게 할텐가? 혹시 당시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 다니던 지금의 20대의 탓을 할 생각인가?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투쟁하지 않는 20대는 까인다.


그러나 지금의 20대가 스무살이 되었을때, 그들이 가진 투쟁 역량은 80년대 갓 20대가 되었던 그들보다 오히려 열악하다.

80년대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직이 있었고, 동지가 있었고, 선배와 후배가 있었으며, 지도자가 있었고, 자신 스스로 당당한 이론이 있었다. 그리고 싸워 마땅한 살인자 전두환이 있었다.

지금의 20대는 생명의 위협은 받지 않지만, 나머지 모든 것이 없다.


다시 질문하겠다. 당신분들은 80년대에 함께 투쟁하지 않았던 나머지 20대에게도 지금의 20대에게처럼 저주를 퍼부었는가?




4. 이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고 되먹지도 않은 도발을 해대는 것이 사회와 시대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진정 생각하는가?


이상은 이상적인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그 이상의 빛이 퇴색하지 않는다.


20대에도 찾아보면, 시대를 바꾸기 위해 "싸우겠다."를 선택한 사람이 소수이지만 분명 있다. 

물론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지만, 소규모 인원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고, 취직전선에서 낙오될 위기에 처하며, 사회적으로도 인정 받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당신들이 이렇게 20대를 까면, 또는 도발하면, 현장에서 쎄빠지게 고생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거 같은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을 더 어렵고 곤란하게 만들까?

뇌가 있다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20대의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바꾸고 싶으면, 이렇게 비열하게 비난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와서 설득하고, 이미 활동하고 있는 소수의 20대와 대화하기 바란다. 그들을 돕기 바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몽둥이로 후두려 팬다고, 따끔한 말로 일침을 가한다고 그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멍청한 발상이야말로 이른바 군대식의 사고일 뿐이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지적이 아니라 의사와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당신분들은 안타깝게도 의사가 아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 제발 자폭 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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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사실관계 확인을 하자면, 작년 촛불때 대학교 학생회 깃발도 많았을 뿐더러, 20대도 상당히 많이 참가했다. 그리고 촛불의 시작이었던 몇몇 패션커뮤니티의 주도 세력이 10대나 30대 뿐이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by ellouin | 2009/06/12 20:43 | 잡담 | 트랙백 | 덧글(39)

개드립. 부모와 자식세대. 내새끼세대. 386

386이 88세대를 깐다.

386 세대는 60년대 생이다.

386앞 세대는 50년대 생이다.

88세대는 50년대 생의 자녀이다.

지금의 10대는 60년대 생의 자녀이다.


니들 자식은 답이 없다.

우리들 자식은 희망이다.



니 새끼들은 못났다. 나약하다. 답이 없다.
내 새끼들은 잘났다. 패기있다. 희망이 있다.


이게 무슨 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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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ouin | 2009/06/12 07:28 | 잡담 | 트랙백 | 덧글(5)

어느 사람의 병X 인증?

너희는 글렀어. 삽이나 들고 강이나 파라고!에서..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
라는 분이

충대신문에 

라는 글을 올려놨군요.


저 글의 가장 압권은 맨 마지막 부분인데요.

"다만, 나는 지금 10대에게 큰 기대를 건다. 이 친구들은 촛불의 발화점이 됐던 소위 촛불 소년 소녀 세대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애들이다. 독재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내년 또는 내후년쯤이면 아마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너희 세대를 앞지를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판 돈 모두를 걸련다. 너희에게 너무 야박하게 들렸을 법한 이야기였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라는 군요.

이 아저씨의 천박한 현실인식이 참 가소롭군요.

3년 쯤 후에 대학에 입학할 아이들은 취업 레이스에 안 내몰린답니까? 아마 명박이가 경제 말아먹으면 취업하기 더 힘들텐데?


아래는  보기 좋지 않은 내용으로 접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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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

by ellouin | 2009/06/12 00:01 | 잡담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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