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김용민

20대 까는 분들 좀 와서 얘기 좀 합시다.

어느 사람의 병X 인증?에서 계속


한번 이야기 좀 해봅시다.



1. 세대론의 허구성.

2. 왜 까는지도 애매한 모호함.

3. 20대가 호구인 것이 투쟁을 안해서인가?

4. 이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20대 세대론의 허구성.

나는 386이라는 단어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것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다. 386은 애초에 젊은 정치세력을 까기 위해서 임의로 뭉뚱그린 하나의 만들어진 표어이다. 80년대에 386이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때는 386컴퓨터도 없었고.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7년 1월 4일자 조선일보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 용어일 뿐이다.

그리고 이 386이라는 단어는 60년 생, 80년대 대학교 입학생에 국한된다. 게다가 동일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으로 국한하면, 그 수는 더 줄어든다. 즉 386세대는 80년대의 20대 중 특수한 집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은 지금과 달리 높지 않았다. 1999년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 포함 진학률은 75.4%에 달하지만, 1980년도에는 21.3%, 1985년도에는 36.3%에 불과하다. 당시 모든 대학생들이 모두 386세대의 정서를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물론 동 연령 인구집단에서 10에서 20%가 동일 정서를 공유하고, 어떤 공동체험을 했으므로 386세대는 충분히 하나의 세대로 인정될 수 있다. 그들은 큰 테두리에서 동일한 정치적 목표 - 군사독재철폐 - 를 지향했으므로 단일한 세대로 취급될 수 있다. 물론 나머지 최소 50%이상의 동일연령의 그러나 386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에 같은 도식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우석훈이 주장한바와 같이 지금의 20대 즉 80년대생을 88만원 세대로 묶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취직난과 비정규직의 위협, 저임금등의 환경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나, 사회적 환경이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88만원 세대는 386세대와는 다른 의미의 세대인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같은 "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내포하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우선 88만원 세대는 대학생에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고학력(이른바 명문대 인기과)이거나 높은 사회계층의 사람은 제외되는 반면에, 386세대는 대학생에 국한되고 고학력에 집중되어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는 엘리트세대가 아니지만, 386세대는 엘리트세대라는 것이다.(조악하지만, 엘리트를 인구집단의 상위 20%로 생각해보자.)

그리고 정치적 지향의 측면에서도 386세대는 비교적 공동의 지향이 있었던 반면에, 88만원 세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80년대에도 60년대 생 인구집단의 정치지향은 나뉘어 져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88만원 세대도 그러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바에 의하면, 88만원 세대는 동일한 사회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나 양태면에서 오히려 동시출생집단(cohort)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 범주가 몹시 넓은 광의의 세대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에 그 누구도 당시 20대인 60년대생 전체에게 386이 되기를 요구할 수 없었듯이, 지금의 20대 80년대생 전체에게 386이 되기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20대론은 흡사 "모든 어린이들에게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광범위하고 무의미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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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까는지도 애매한 모호함.

김용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20대를 질타하는 것은 대부분 그들이 이기적이고, 사회에 관심이 없으며, 토론하지 않고,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장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맞다.

그 말이 맞다.

많은 20대는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 관심이 없고,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장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그렇다.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20대는 그 누구보다도 토론을 많이 해본 세대다. 놀라셨나? 놀라셨을 거다. 지금의 20대는 인터넷 문화에 매우 익숙하다. 인터넷은 시각정보에 집중된 매체이고, 문자, 문서, 그림, 영상으로 소통된다. 그들은 끊이없이 문자를 쓰고, 글을 쓴다. 

남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걸 하는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병림픽"이라는 단어를 알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서로 싸움이 붙은 것을 병림픽이라고 부른다. 병신 올림픽이라는 뜻인데, 이른바 무의미한 자존심 싸움이나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 가지고 싸우는 것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그 병림픽은 글로 진행된다. 서로의 글을 붙잡고 서로 욕하고, 서로의 글의 무논리성과 가치없음을 가지고 우열을 가린다. 병림픽의 승자는 상대방이 더이상 그 어떤 논리로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할 정도까지 계속해서 글을 쓴다. 패자는 자신의 논리가 떨어지면, "사과문"을 올리던지, 아니면 자신의 글을 지운다.

이게 토론이 아니면 뭔가? 물론 병림픽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소통 중 가장 하급의 저열한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서로 면상보고 있으면, 주먹 날리고 발로 찰테지만, 지금 세대는 글을 쓰고 논리을 만들어 공격한다. 이게 토론이 아니면, 진중권에 대한 변희재의 끝없는 구애가 토론인가? 아니면 티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나와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하는게 토론인가?

그리고 20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누군가가 만든 덫에 빠졌음을 알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게나마 대충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취업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취업을 할때, 300~400만원씩 받는 직장이 이제는 거의 없다는 것 모르는 20대가 있을까? 그런 현실이 단순히 경제가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 20대가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취직이나 공무원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냥 놀고 있겠지.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많은 20대는 "이길 수 없다."를 선택했다.


그 것이 차이다. 그리고 당신분들은 그 선택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20대가 멍청하거나,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많은 20대가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당신분들은 20대를 까거나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3. 20대가 호구인 것이 투쟁을 안해서인가?

앞서 이야기 한대로 많은 20대는 "이길 수 없다."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규모 투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까인다. 새차게 까인다. 그 깟거 취직문제야 우리도 힘들었지만 우린 투쟁했어. 이렇게 20대는 비겁자가 된다. 많은 20대가 비겁자로 지칭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과연 그렇게 앞뒤 안가리고 까기만 할 수 있는 상황인가?
많은 20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충분했는데도, "이길 수 없다."를 선택한 것인가?

아니다.

먼저 다시 앞으로 잠깐 돌아가서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이 과연 옳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직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내리기 까지는 그가 가진 환경과 역량을 따져보았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 조금 관심있는 평범한 대학생을 가정해 보자.

그는 예전보다 안전하다. 더이상 경찰이 밤길에 방문해서 산아래 작은집으로 끌고가지는 않는다. 변사당하거나 의문사 당할 걱정도 없다. 고문도 당하지 않는다. 취직에 있어서도 운동권이기 때문에 기피당하지는 않는다.

그는 예전보다 외롭다. 학생회 조직은 붕괴되었다. 동아리 라인도 사라졌다.

그는 미래가 위태롭다. 그는 수 많은 쓰고 버릴 수 있는 듣보잡 대학생 중 하나일 뿐이며,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잉여인력이 산적해 있다. 9급시험 통과하기도 토나오게 어렵다. 대학생이라고 취직되던 시절은 갔다.

그는 심지어 명예와 명분도 없다. 그가 뭔가에 대항해서 싸우려 해도 과연 그가 옳은 것인지 지지하여줄 이론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자가 없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지해줄 친구, 선배, 후배도 없다.

그는 집회 나갈래도 외롭다. 학생회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도 없다. 학생회라봤자 몇명이 모여서 그들 내부 단속하기도 어려워보인다. 집회에 나가서 혹시 연행이라도 되고, 벌금이라도 맞으면 모금운동을 해줄 조직도, 위로해줄 동지도 없다. 구속당해도 그를 풀어주라고 외쳐줄 조직이 없다. 그가 연행되면 그냥 그 혼자 연행된 것이다. 치료비와 벌금은 알바를 하든 부모님 지갑에 대못을 박든해서 채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를 선택한 그가 이렇게 욕을 먹어 마땅한가?


그가 외롭게 소모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외롭게 광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 진정 옳고 그렇지 않은 그는 부도덕한가?

이정도 의식이 있으면 괜찮다고 말할텐가? 당신분들의 지적은 그보다 더 의식없는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은가?

외롭게 행동하지 않고 있는 "의식만 있는" 이와, "이길 수 없다."를 당연하게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선거 이야기가 나올텐데, 투표가 어쩌구 다 좋다. 하지만, 87년 그 항쟁 후에 대통령이 노태우가 되지 않았나.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명박과 사회의 탓을 20대에게 하려면, 노태우의 탓은 누구에게 할텐가, 김영삼의 탓은 누구에게 할텐가? 혹시 당시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 다니던 지금의 20대의 탓을 할 생각인가?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투쟁하지 않는 20대는 까인다.


그러나 지금의 20대가 스무살이 되었을때, 그들이 가진 투쟁 역량은 80년대 갓 20대가 되었던 그들보다 오히려 열악하다.

80년대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직이 있었고, 동지가 있었고, 선배와 후배가 있었으며, 지도자가 있었고, 자신 스스로 당당한 이론이 있었다. 그리고 싸워 마땅한 살인자 전두환이 있었다.

지금의 20대는 생명의 위협은 받지 않지만, 나머지 모든 것이 없다.


다시 질문하겠다. 당신분들은 80년대에 함께 투쟁하지 않았던 나머지 20대에게도 지금의 20대에게처럼 저주를 퍼부었는가?




4. 이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고 되먹지도 않은 도발을 해대는 것이 사회와 시대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진정 생각하는가?


이상은 이상적인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그 이상의 빛이 퇴색하지 않는다.


20대에도 찾아보면, 시대를 바꾸기 위해 "싸우겠다."를 선택한 사람이 소수이지만 분명 있다. 

물론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지만, 소규모 인원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고, 취직전선에서 낙오될 위기에 처하며, 사회적으로도 인정 받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당신들이 이렇게 20대를 까면, 또는 도발하면, 현장에서 쎄빠지게 고생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거 같은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을 더 어렵고 곤란하게 만들까?

뇌가 있다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20대의 "이길 수 없다."는 선택을 바꾸고 싶으면, 이렇게 비열하게 비난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와서 설득하고, 이미 활동하고 있는 소수의 20대와 대화하기 바란다. 그들을 돕기 바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몽둥이로 후두려 팬다고, 따끔한 말로 일침을 가한다고 그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멍청한 발상이야말로 이른바 군대식의 사고일 뿐이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지적이 아니라 의사와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당신분들은 안타깝게도 의사가 아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 제발 자폭 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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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사실관계 확인을 하자면, 작년 촛불때 대학교 학생회 깃발도 많았을 뿐더러, 20대도 상당히 많이 참가했다. 그리고 촛불의 시작이었던 몇몇 패션커뮤니티의 주도 세력이 10대나 30대 뿐이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by ellouin | 2009/06/12 20:43 | 잡담 | 트랙백 | 덧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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