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그 그리고 나 - 투표권에 대한 대화

몇일 전 새벽 나는 디시인사이드의 모 갤러리(게시판)에서 어느 사람과 긴 댓글로 다투고 있었다. 늘 하던대로 심심함에 무의미하게 클릭을 반복하고 있을 때, 그의 글이 올라왔다. "여기 백수인사람있어?"라는 글. 내용은 "그럼 정치에 대해 욕하지마  그냥 나처럼 선거권포기해  그럼 적어도 욕할 권리는 생겨" 였다.



처음 나는 심심한 차에 잘됐다. 한번 까보자라는 생각으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선거권을 포기하는것이 욕할 권리가 생긴다는 그의 말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서로 합쳐 200여개의 댓글이 오갔고, 단순한 장난기 섞인 악의가 어느새 오기로, 그리고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정치라는 것은 결국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내가 가진 투표권은 이쑤시개만도 못한 하찮은 것, 어짜피 안될 것 차라리 초연한게 낫다고 말했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흔한 것이다. 정치에 실증나고 지겨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또한 일부분 그러한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한다.이렇게 그의 주장은 그렇게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댓글 속에는 내 심정을 천천히 뒤흔든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나는 그 200여개의 댓글 속에서 그를 여러차례 모욕했다. 처음에는 그가 너무 답답했다. 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며, 그가 정치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단지 귀찮아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를 모욕해서 도발했다. 나는 그에게 "너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비겁한 놈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넌 히키코모리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그냥 사회에 관심없고 귀찮게 생각할 뿐인 평범한 20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모욕하면 그가 화를 내면서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와 논쟁하고 싸울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논쟁 앞부분부터 어느샌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오는 모욕을 모른척했다. 쓰레기, 비겁한놈, 히키코모리라는 인격모독에 반응하지 않았다. 논쟁이 계속되는 순간 나는 먹먹해졌다. 내 앞에 있지 않은 그가 내가 추측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가져왔다. 그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자신에 대한 반복적인 모욕조차도 - 그 것이 비록 가상공간의 것이라 할지라도 - 한 마디 분노조차 표현하지 않았다. "형 진짜 비유 못한다" 정도의 반응을 보인것이 전부다. 그는 스스로의 인격을 방어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나 형 모두" 정치의 피해자일 뿐이며,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할 때, 그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보다 덜 위험하고, 오히려 너의 영향력과 힘이 생각보다 크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두려워하지말라는 말을 했을때, 그는 그 말을 뛰어넘었다.

우울증의 대표 증상 중 해로운 자극을 피하지 않거나, 유익한 자극을 찾지 않는 것이 있다. 그의 모습이 그러한 우울증의 증상과 겹쳐보였다. 그의 자존감은 -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인격은 - 이미 훼손되어서 내가 가한 모욕따위로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아보였다. 빅터 프랭클이 증언했던, 아우슈비츠에서의 회고가 떠올랐던건 나의 과민함이었을까. 자신이 모욕당하고 자신의 논지가 논박당함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변명하듯이 반복했다.

논쟁이 마무리되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절대 형보다 잘난 생각하고있다고 생각"하며, "전혀 쫄지도않았고 위에서 도 말했듯이 쫀건 형이야"라는 것이다. 나는 슬펐다. 나는 결국 그에게 나의 논리를 설명하지 못했고, 단지 그를 위압하고 압박했을 뿐이었다. 상처입은 사람에게 나의 논리와 당위를 디밀어 그를 학대했을 뿐이었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차라리 내가 만났던 그가 누군가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가장한 거짓인격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뒤늦게야 내가 폭력을 휘둘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와 대화하지 못했고, 그라는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여느 사람처럼, 여느 사회처럼 그를 윽박지르고, 몰아쳤을 뿐이다. 그 이유가 당위와 정의가 되었건, 공부하라는 부모의 책망이었건, 그를 우습게 보며 무시하는 시선들이었건, 자신의 상처입고 낙담한 것을 공격적으로 뱉어내는 울부짖음이었건 그건 중요치 않다.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차근차근 압박당해왔을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 왜 그가 선거권을 포기하는 문제로 나에게 모욕당해야했을까?

그 것은 합당하지 않다. 결코 합당하지 않은 모욕이다. 옳지않은 매도이다. 내가 너무나도 폭력에 물들어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너무 익숙했다. 그것이 일반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의 모습이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런 험한 세상이 닥쳐왔고, 그것에 받아쳐 싸웠기 때문에 그 싸움을 타인에게도 폭력적으로 짓눌러댔을 뿐이다.

그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 게시판을 몇일에 걸쳐 샅샅이 뒤지고 검색했다. 그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 게시판을 비롯한 디시의 게시판을 떠돌며, 이른바 "뻘글"을 올리고, 게시판 내의 다른 사용자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피해의식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게시판에 딱히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남는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게시판에 상주하는 듯 싶었다. 그는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는 소심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수많은 압박에 짓눌린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20대였다.

나는 나의 동년배 대중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아무생각도 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옳고 그른건 관심도 없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자신의 쾌락에 급급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를 만나고 단지 두려워졌다. 내가 그렇게 경멸하던 사람들의 심정 기저에 그와 비슷한 그런 눌린 괴로움이 있다면, 그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이 자신의 고통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면, 자극적인 쾌락이 아니면 더이상 감흥을 느끼기 힘들만큼 감성이 마모된 것이라면!

물론 이렇게 극단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리라. 하지만 갈수록 20대 - 젊은 층의 우울증이 늘어만 간다는 여러 보도를 또한 접하면서,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세대를 보며, 이 사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낼 용기와 패기를 가지기는 커녕, 부모 세대의 인습을 답습하고 안주할 뿐 새로운 "다음 세대"의 사회를 만들어 낼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 정치 문제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기는 커녕, 무관심에 무지가 더해 갈수록 우경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허구의 세계에 또는 삶의 미시의 세계에 매몰당해 사회 실상을 직시하지 못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강자의 무자비한 폭력이며, 기존 세대의 무책임한 변명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IMF를 사춘기와 함께 겪으며 갑작스럽게 사회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무능력자라는 각인과 압력속에 지내야했고, 실제의 확고한 적 - 독재세력 - 이 부재한 상황에서 가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려 취업과 생계만을 생각해야하는 그들이, 의식화 과정을 마저 충분히 겪지 못한 것이 단지 그들의 나약함만의 문제인가! 어쩌면 그들이 기존세대보다 나약하고 부족하여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수없이 알지도 못한채 상처입은 그들에게 또 다시 당위를 들이대며 그들의 못남을 탓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는 투표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몰랐다. 국민 기본권의 의미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경멸하고 모욕했다. 내가 옳은가. 나는 옳지 않았다. 나는 부끄럽다. 그가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가? 고등학교 시간에 한두시간 밑줄쳐 주고 시험에 나온다고 외우라고 한 그놈의 단어가, 시험치고 나와서는 가끔 포털 기사에 몇번 보일 뿐인 단어가, 그에게 중요한가. 그놈의 투표권이 그의 삶을 지켜주는가, 그의 취직을 책임져주고, 왕따당하는 그를 구원하는가. 아무도 그에게 투표에 대해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그 전에 이미 인간의 기본권 따위는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말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훼손당하며 살아왔는데, 그가 그 것을 알고 관심가지며 연구해야만 했었겠는가.

내가 잘못한 것이다. 의식과잉일 뿐 결국 타인과 - 서로 100여개씩의 댓글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 소통은 커녕, 그를 비웃었을 뿐인 내가 약자의 권리를 논할 자격이있을까. 오히려 내가 약자와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대선이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노동이 어떠고 말해온 것은, 말그대고 지적 허영과 천박한 권력욕이었을 뿐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르친다. 어느 것이 옳다. 어느 후보를 찍어야한다. 어느 후보는 나쁘다. 대선이 다가올 수록 백사람이 선생이 되고, 백가지 논쟁이 피를 튀긴다. 그러나 민주주의 축제인 선거가 다가올 수록 축제의 주인공은 눈이 뒤집혀 싸움터로 나갈 뿐, 진정한 민주주의는 점점 멀어져간다. 대화와 토론따위는 - 나와 밤새 논쟁했던 그의 표현대로 - 교과서에만 있을 뿐이다.

by ellouin | 2007/10/16 05:08 | 잡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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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lytie at 2007/10/16 20:30
밸리 타고 왔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진정한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시사 인에서 저희를...지금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하더군요.
윗 세대에 눌린...그런 세대.
취업과 생계에 대한 압박에 눌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세대.
초,중,고등학교 지겹도록 다니던 학원을 대학생이 되어 취업이란 장벽 때문에 또 다니는 세대.
취업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부모님의 돈을 축낸다고 구박 받는 세대...

여지저기에 치이고 눌려서 자신의 무능함을 쉽게 인정해버리고 정치라던가 사회에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 걸지 않는 세대가...저희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중간에 저희 세대에 대한 언급이 있길래 한번 주절거려 봤네요.^-^
Commented by ellouin at 2007/10/17 02:54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정서적으로 너무 격양된 상태에서 쓴 것이라 현실적인 부분이 결여가 되어 있어서, 너무 이상적인 말만 하다 끝난 한풀이가 되지 않았나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더 스스로에게 두려운 것은 단지 세대간의 압박 뿐 아니라 세대 안에서도 심각할 정도의 부, 정보의 격차가 이미 발생했고, 이는 결국 한국의 향후가 좀더 어두운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불러옵니다.

약자를 경멸하는 태도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고 그 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허상일까요..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지요?^^
Commented by 썩은된장 at 2007/10/17 02:58
자네가 싫어하는 동년배 대중의 하나가 왠지 나같다는 생각에 움찔했다만...
정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 취하고 싶지 않고
내가 뭐 고통에 중독되어 감성이 마모된건 아닌데...
글쎄 우울증.... 자신이 우울증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우울증일 확률이 낮다고 생각하고 싶어
Commented by 썩은된장 at 2007/10/17 02:59
ㅋㅋ 너 지금 여기 있나보구나
나도 알바 갔다와서 방금 여기 들어왔는데
Commented by ellouin at 2007/10/17 03:05
아... 딱히 너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ㅎ
생각없이 순간순간의 쾌락만 쫓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점이지.
우울증은.. 우리는 모두가 잠재적 우울증 환자야. 우울증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더라고, 단지 그 정도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사람이 "우울증 환자"라고 불리는 것 같아.

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어느 세대나 고통과 부조리에 노출되어있기는 마찬가지인데, IMF나 무한경쟁사회, 세계화 같은 환경요소가 몰아치는 기분이라서. 그리고 글에서 나온 "그"는 정도가 심해보였고, 그런 것이 누구에게나 약한 정도이겠지만, 결국 있을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복잡하고 씁쓸하더라고.ㅎ
Commented by lived777 at 2007/10/17 22:20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에 마모되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너무나 힘들지...
부조리를 인식하고 바꾸려고 보면 상대가 너무 거대해서, 움직이지 않을 꺼 같아서, 바꾸려 발버둥처도 발버둥일 뿐이여서 무기력하고 우울하니...
세계에게 소외받고 있는 느낌이지, 그럴때는 너무 외로워서 친구에게 전화걸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고 한잔 마시고 싶곤해...
Commented by ellouin at 2007/10/26 19:59
메마른 땅에도 꽃이 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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