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7일
이승만 친"친일파" 정권
이승만 반일 정권 by sonnet에서 트랙백
본 글을 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쓰여졌습니다.
ellouin, 군사독재부역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친일부역자와 군사독재부역자, 2008-06-21
ellouin, 친일파 색깔론이라고요? -오타수정080717, 2008-07-16
일상적인 통념으로 볼 때, 친일과 친"친일파"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됩니다.
그래서 친(일본) = 친(친일파)라는 구조가 성립되고 일본 = 친일파 라는 인식의 비뚤림(bias)이 생깁니다.
엄밀하게 규정하자면, 친"일"과 친"친일파"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sonnet님께서 예로 드신 쿠바의 시가와 흑묘백묘는 일반적으로 "명분보다는 실리"라는 맥락으로 많이 쓰이는 예시일 것이다. 흐루쇼프는 아마 시가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귀찮게 시가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바뀐 건 시가 따위의 말장난을 한 것일테지요. 그리고 덩샤오핑도 기존에 해 왔던 많은 언행을 뒤집기 위해서 "흑묘백묘"라는 위대한 말장난을 시전하셨고, 크리가 터져서 명언이 되었습니다.
말장난은 보통 기만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래서 말장난을 들으면 손가락과 그 것이 가리키는 달을 혼동하기 쉽게되지요.
말장난은 그만하고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친"친일파" 정권이었습니다.
물론 친소(親疏)에 대한 용어 정의에 따라서 이 명제에 대한 찬반과 호오가 나뉘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친미, 친일, 친중 등의 어감에서 이승만 정권은 친"친일파"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친"친일파" 행위는 반민특위 박살내기였습니다.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이 이승만의 외압 등으로 무마되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증거로 명확하고, 또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공식적 입장이므로 이 것의 사실여부를 굳이 여기서 따지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반민특위의 친일에 대한 기준은 4조12의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 라는 부분의 모호함을 제외하면, 수 많은 일제 강점하 부역자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도적 행동", "악질적 죄적 현저", "민족적 죄적 현저", "책임경영" 등의 문구를 볼 때, 반민특위 행위가 피빛 숙청으로 얼룩지지 않고, 이른바 정교한 외과수술적 핵심인물의 축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를 살던 반민특위 구성원들도, 자신들의 행위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대숙청으로 빠지지 않고, 단지 일벌백계할 수 있는 이른바 몸통의 실체만을 폭로, 처벌하여 반민족 부역자 전체의 충격과 반성을 유도하려는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반민특위의 특별경찰대의 다수가 우익 청년단체 출신이었다는 것은, 후일 반민특위에 씌워지는 빨갱이 딱지에 비추어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반민특위가 여러 악명높은 친일파네임드몹들을 가두자 이승만은 이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 와해시킵니다.
당시 악명높은 친일 경찰을 반민특위가 잡아들이자,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특별경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당시 검찰총장인 특별검찰관장도 무장을 해제당합니다. 그리고 친일경찰을 빼가죠. 이는 국회 프락치사건, 김구 암살 사건 등 이승만의 '6월 공세'의 일부로 당시 이승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합니다.
결국 반민특위는 기존의 위원들이 전원사퇴하고, 흐지부지 무마됩니다. 기존에 잡아들였던 다수의 "악명높은 친일 부역자"도 다수가 무죄, 집행유예등으로 풀려납니다.
이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의 의지였습니다.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공안정국을 통해서 권력을 확고하게 하려는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파 처단을 원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단 한번 뿐인 친일파 청산의 기회는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후로도 이승만은 독재를 해먹다가 4 19 혁명으로 대통령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도망칩니다.(니나 가라 하와이 응?)
이러한 이승만 정권의 행동은 분명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정적제거와 권력 유지를 위한 법질서의 파괴는 어떤 적절한 명분으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승만 정권이 그 악행이 가려져서 재평가 되려는 시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이 반일적 대외정책을 편 것이 명백하지만, 이 것이 이승만의 친"친일파" 성향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승만 개인의 속심이 친일파를 미워했을지언정,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친일파를 보호하고 이용했다는 것을 볼때, 이 행위가 그가 유망한 독립운동가였던 것으로 가려질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이승만의 반일 정부에 참여한 舊친일파가 있다면 자신의 친일 문제를 다소나마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라는 문장에 동의하지만, 이승만의 10여년 치세가 독재와 부정부패로 얼룩졌고, 결국 수많은 국민들의 피흘린 혁명으로 내쫓겨 추한 마무리로 끝난 것을 볼 때, 이승만에게 기용된 친일 부역자들의 반민족적(친일문제는 결국 반민족적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행위는 독재 부역과 부정부패로 계속되었고, 전혀 속죄하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친일파"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의 한나라당은 아직도 친"친일파" 노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승만의 친"친일파" 문제는 오늘 여기의 우리의 문제인 셈 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정권에 친일이 아닌 친"친일파"의 명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은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제된
최재성, 반민특위의 구성, 활동, 해체, 2005-11-17 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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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을 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쓰여졌습니다.
ellouin, 군사독재부역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친일부역자와 군사독재부역자, 2008-06-21
ellouin, 친일파 색깔론이라고요? -오타수정080717, 2008-07-16
일상적인 통념으로 볼 때, 친일과 친"친일파"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됩니다.
그래서 친(일본) = 친(친일파)라는 구조가 성립되고 일본 = 친일파 라는 인식의 비뚤림(bias)이 생깁니다.
엄밀하게 규정하자면, 친"일"과 친"친일파"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sonnet님께서 예로 드신 쿠바의 시가와 흑묘백묘는 일반적으로 "명분보다는 실리"라는 맥락으로 많이 쓰이는 예시일 것이다. 흐루쇼프는 아마 시가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귀찮게 시가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바뀐 건 시가 따위의 말장난을 한 것일테지요. 그리고 덩샤오핑도 기존에 해 왔던 많은 언행을 뒤집기 위해서 "흑묘백묘"라는 위대한 말장난을 시전하셨고, 크리가 터져서 명언이 되었습니다.
말장난은 보통 기만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래서 말장난을 들으면 손가락과 그 것이 가리키는 달을 혼동하기 쉽게되지요.
말장난은 그만하고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친"친일파" 정권이었습니다.
물론 친소(親疏)에 대한 용어 정의에 따라서 이 명제에 대한 찬반과 호오가 나뉘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친미, 친일, 친중 등의 어감에서 이승만 정권은 친"친일파"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친"친일파" 행위는 반민특위 박살내기였습니다.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이 이승만의 외압 등으로 무마되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증거로 명확하고, 또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공식적 입장이므로 이 것의 사실여부를 굳이 여기서 따지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반민특위의 친일에 대한 기준은 4조12의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 라는 부분의 모호함을 제외하면, 수 많은 일제 강점하 부역자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도적 행동", "악질적 죄적 현저", "민족적 죄적 현저", "책임경영" 등의 문구를 볼 때, 반민특위 행위가 피빛 숙청으로 얼룩지지 않고, 이른바 정교한 외과수술적 핵심인물의 축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를 살던 반민특위 구성원들도, 자신들의 행위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대숙청으로 빠지지 않고, 단지 일벌백계할 수 있는 이른바 몸통의 실체만을 폭로, 처벌하여 반민족 부역자 전체의 충격과 반성을 유도하려는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반민특위의 특별경찰대의 다수가 우익 청년단체 출신이었다는 것은, 후일 반민특위에 씌워지는 빨갱이 딱지에 비추어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반민특위가 여러 악명높은 친일파
당시 악명높은 친일 경찰을 반민특위가 잡아들이자,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특별경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당시 검찰총장인 특별검찰관장도 무장을 해제당합니다. 그리고 친일경찰을 빼가죠. 이는 국회 프락치사건, 김구 암살 사건 등 이승만의 '6월 공세'의 일부로 당시 이승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합니다.
결국 반민특위는 기존의 위원들이 전원사퇴하고, 흐지부지 무마됩니다. 기존에 잡아들였던 다수의 "악명높은 친일 부역자"도 다수가 무죄, 집행유예등으로 풀려납니다.
이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의 의지였습니다.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공안정국을 통해서 권력을 확고하게 하려는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파 처단을 원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단 한번 뿐인 친일파 청산의 기회는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후로도 이승만은 독재를 해먹다가 4 19 혁명으로 대통령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도망칩니다.
이러한 이승만 정권의 행동은 분명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정적제거와 권력 유지를 위한 법질서의 파괴는 어떤 적절한 명분으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승만 정권이 그 악행이 가려져서 재평가 되려는 시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이 반일적 대외정책을 편 것이 명백하지만, 이 것이 이승만의 친"친일파" 성향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승만 개인의 속심이 친일파를 미워했을지언정,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친일파를 보호하고 이용했다는 것을 볼때, 이 행위가 그가 유망한 독립운동가였던 것으로 가려질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이승만의 반일 정부에 참여한 舊친일파가 있다면 자신의 친일 문제를 다소나마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라는 문장에 동의하지만, 이승만의 10여년 치세가 독재와 부정부패로 얼룩졌고, 결국 수많은 국민들의 피흘린 혁명으로 내쫓겨 추한 마무리로 끝난 것을 볼 때, 이승만에게 기용된 친일 부역자들의 반민족적(친일문제는 결국 반민족적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행위는 독재 부역과 부정부패로 계속되었고, 전혀 속죄하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친일파"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의 한나라당은 아직도 친"친일파" 노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승만의 친"친일파" 문제는 오늘 여기의 우리의 문제인 셈 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정권에 친일이 아닌 친"친일파"의 명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은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제된
최재성, 반민특위의 구성, 활동, 해체, 2005-11-17 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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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8/17 14:53 |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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